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롬바르디아 철관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랑고바르드 왕국]]은 다른 [[게르만족]] 왕국이 그랬듯이 그 당시 기술력 부족과 전통적 요소로 철로 만든 왕관을 썼다. 전승에 따르면 랑고바르드 왕국에서 철관을 제작할 때 [[예수]]의 몸에 박혔던 실제 못인 [[성정]] 중 하나를 펴 발려서 붙였다고 한다. [[프랑크 왕국]]의 국왕 [[카롤루스 대제|카롤루스]]가 랑고바르드 왕국을 정복한 뒤 그는 이탈리아 군주로서 이 철관으로 [[대관식]]을 받았으며, 이후 [[이탈리아 왕국(중세)|중세 이탈리아 왕국]]의 군주들 역시 이 철관을 왕관으로 삼으면서 롬바르디아 철관은 이탈리아의 왕권을 상징하게 되었다. 거기에 성정 중 하나가 붙어 있으니 종교적 권위도 높았다. 중세 이탈리아 왕국이 [[신성 로마 제국]]에 속한 뒤로 [[로마왕]]들은 먼저 이탈리아의 국왕으로서 롬바르디아 철관으로 대관식을 치른 다음 [[로마]]로 가서 [[교황]]에게 [[신성 로마 제국/역대 황제|신성 로마 황제]]로서 대관을 받았다. 이탈리아 국왕 대관식은 전통적으로는 중세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인 [[파비아]]에서 치렀지만, [[콘라트 2세]] 이후에는 [[밀라노]]에서도 대관하게 되었고, [[카를 5세]]는 [[볼로냐]]에서 이탈리아 국왕 대관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대관을 동시에 받았다. 카를 5세를 마지막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이 더는 교황의 대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[* 실제로는 카를 5세의 조부 [[막시밀리안 1세(신성 로마 제국)|막시밀리안 1세]]가 교황의 대관을 필요로 하지 않고 [[선제후]]의 투표만으로 황제로 선출될 수 있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. 카를 5세의 대관식은 교황을 꺾었다는 정치적 세레머니이자 요식행위에 불과했을 뿐이다.] 이탈리아 국왕 대관 역시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. 롬바르디아 철관은 대관식 없이 한동안 보관되다가 [[나폴레옹 전쟁]] 중 [[나폴레옹 보나파르트]]가 [[이탈리아 왕국(나폴레옹)|새로운 이탈리아 왕국]]의 국왕으로서 이 철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다.[*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트가는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 [[토스카나]] 지방에 정착한 랑고바르드족에게서 기원했다.]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[[롬바르디아]] 지역과 [[베네토]] 지역은 [[빈 회의]]에 의해 [[롬바르디아-베네치아 왕국]]으로서 [[오스트리아 제국]]과 [[동군연합]]이 되었고, 롬바르디아 철관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롬바르디아-베네치아 국왕 대관식에 사용되었다. 이 철관으로 대관식을 치른 마지막 군주는 [[페르디난트 1세(오스트리아 제국)|페르디난트 1세]]였다. [[이탈리아 통일]] 전쟁이 발발하고 [[사르데냐 왕국]]이 롬바르디아 지역을 합병하자 롬바르디아 철관은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에 보내졌다가 이탈리아로 반환되어 몬차 대성당에 보관되었다. 그 뒤 롬바르디아 철관은 통일 [[이탈리아 왕국]]의 상징이 되었다.[* 정작 [[사르데냐 왕국]]과 [[이탈리아 왕국]]의 통치 가문인 [[사보이아 가문]]의 군주들은 초대 사르데냐 국왕 [[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]]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왕도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다. 심지어 [[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]]도 사르데냐 국왕이 아닌, [[위트레흐트 조약]]으로 [[시칠리아]]를 얻었을때 [[팔레르모]]에서 시칠리아 국왕으로 대관식을 치렀을 뿐이었다.] || [[파일:이탈리아 왕국 국장.svg|width=100%]] || || 이탈리아 왕국의 국장을 보면 가운데 투구 위에 롬바르디아 철관이 씌워져 있다.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